독감이 한창 기승이다. 특히나 이번 감기는 심한 상태가 지속돼서 얼굴만 맞대면 감기 조심! 을 서로 외쳐주고 있는 요즘이다. (입 방정일지는 몰라도) 나는 감기에 꽤 강한 편이다. 평소에 과일을 많이 먹어서 면역력이 좋은 편인건지 감기철이 되어도 살짝 훌쩍이다 지나간다. 그런 내가 이 독감철에 심각한 넵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흡사 외래어 같은 이 '넵병'이란 뭔고 하니,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으로. 어제도오늘도내일도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메신저질을 해대는 상사의 말에 답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직장인들 사이의 애환과 해학이 녹아있는 신조어란다. 나 또한 아침저녁 심지어 주말, 심지어 휴가일 때도 늘 메신저 알람으로 고통받고 있는 1인으로서 오늘 이 '넵병'을 알고 묘한 쾌감과 연대의식을 느꼈다. 메신저에 묶여있는 전국의 부하 직원들이 모두 단결하여 상사들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기분이랄까.
흥미가 생겨 기사를 더 찾다보니 넵병을 앓고있는 이들이 상황 별로 답변을 분석해둔 글도 읽었는데 내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넵병을 알기 이전에 개인적으로 어떤 부당함을 느끼곤 '회사 메신저 언어의 섬세함'이라는 제목으로 메모해둔 내용은 이렇다.
넵 = 가장 일반적으로 씀. 무난한 답변
네 = 보통의 기분이거나 약간 하기 싫은 일 티내고 싶을때 씀
네. = 기분은 나쁘지만 일단은 알겠다(여기서 .마침표는 거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넹 = 기분 좋을때 혹은 아무 생각 없을때 일단 대답해둠
네~ = 넵은 딱딱하고 넹까지의 기분은 아닐때
네네, 넵넵 = 니말 듣기 싫고 그래그래 내가 알았어 걍 해줄게
...... 쓰고 보니 내가 불쌍해질 지경이다. 짧은 답 하나에도 상대방은 아마 눈치채지도 못할 사소한 의미를 담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니.
오늘 아침 출근 전부터 후임도 아닌 같은 급의 직원의 뒷치닥거리를 부탁하는 상사의 지시를 받았다. 매번 왜 나만 남일까지 봐줘야 하는거지? 아침부터 푸들거리며 넵과 네와 네. 사이에서 한 7분 정도를 고민하다 아침에 괜한 열내고 싶지않아 넵이라 보내고나선 혼자 큰 허무에 빠졌다. 그리곤 멍하니 포털에 의미없이 '네넵'을 검색해봤던 게 넵병 발견의 시작.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꾹 참아내고 오늘도 '넵' 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고단함이 내게 뜻하지 않은 작은 위안이 된 셈이다. 기분이 썩 나아지진 않았지만.
아. 재미있는 것은 '네넵'을 검색하면 베트남어 사전이 함께 검색되는데 베트남어로 네넵은 훌륭한, 품위있는 의 뜻이라고 한다. 그럴 확률은 0.마이크로1%겠지만 훗날 베트남인 상사를 만나게 된다면 크게 선심써서 여러 옵션들을 다 뿌리치고 네넵으로만 대답해드리겠다. 서로의 기분이라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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