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커트를 했더니 만능스포츠인이 됐다 by zoamie


숏커트를 했다. 지금껏 부러워만 했던 숏커트의 세계에 나도 드디어 입문한 것이다. 한번 발을 내딛는 순간 너무너무 편해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숏커트의 세계.. 어느새 어깨까지 닿는 거지존에 진입한 탓에 주변 이들 모두가 조금더 생각해보라고 만류했지만 백수인 지금이 최적기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장마철에 춤추는 곱슬과 머리숱 부자인 나는 이대로는 도무지 여름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항상 가는 미용실은 있지만 첫 숏커트 도전이니만큼 숏커트만 6년째 고수중인 친구 M의 추천으로 홍대까지 상경!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숏커트는 커트기술이 관건인만큼 자칫 방심하면 현숙 느낌의 미용실 원장쌤 st 혹은 김병지컷 혹은 비숑..이 될수도 있다는 말에 몸을 떨며 고분고분 친구 말을 듣기로 했다.
미용실은 사람 붐비는걸 싫어하는 내게 안성맞춤. 1인 미용실이었고 주인장 원장쌤이 폭풍 수다쟁이에 입담꾼이셔서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상담 끝에 과감히 커트를 하고 곱슬인들의 필수, 볼륨매직을 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무한 숱치기가 있었는데.. 숱 한번 치고 자, 이제 좀 된것 같죠? ^^ -> 만져본다 -> 숱치기 반복ing. 머리 숱이 너무 많아서 흡사 '가위손' 정원손질급... 나중에는 죄송해질 지경이었다. 볼륨매직 후에도 나의 건강한 머리카락 강철 뿌리가 죽지않아서 2번의 다운펌을 하고나니 꼬박 4시간반이 지나 있었다. 머리 한번 했더니 하루가 다 가버렸어요 하핫. 쌤은 내 머리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고 앞으로 넉넉 4시간은 잡아야할 것 같다며 웃었다. 내일 팔에 알배기시는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3시에 들어가서 7시반에 나온 바깥은 이미 해가 져있었다. 후덥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가벼워서 몇번이나 머리를 쓸어보았다. 지나치는 길거리 쇼윈도와 차창에 머리를 비춰보니 아직은 어색 벙벙하지만 어색해진 내 모습 그대로 좋았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육상부, 수영부, 배구부, 농구부 등등 각종 스포츠부의 선배가 되어있었다. 와 숏커트 한번 했을 뿐인데 벌써 건강해진 느낌! 그래, 스포츠부 선배면 어때 ^^/ 김병지는 아니잖아! 역시 머리를 하면 확실한 기분전환이 된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원장쌤이 말해주신 그 동안 만났던 특이한 손님들 이야기를 곱씹어봤다. 세상엔 정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생을 다하기 전까지 과연 다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요즘엔 내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캐묻는 습관을 갖게된 것 같다. 물론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언젠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는 직업군들을 다뤄보는 것도 재미있겠구나 싶었다. 
미용실 책장에는 표지가 형님인 에스콰이어 과월호가 놓여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바로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제야 보게된 그때의 결과물. 쑥스러운듯 웃고 있는 얼굴과 짐짓 퉁명스러운 척하면서도 조근조근 풀어내는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느껴질만큼 생생해서 그 자리에 없던 것을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퇴사 후 처음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