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효용가치 by zoamie


오랜만에 기자의 연락을 받았다. 일하며 사적으로 그닥 친하진 않았지만 퇴사 소식을 전하자 자기야, 호칭을 써가며 아쉬워해줘서 의아해하면서도 퍽 고마웠던 기자. 빈말이겠지만서도 사무실 근처에 놀러오면 밥 사주겠다며 꼭 오라고 했던 마지막 당부가 떠올라서 잠시 머뭇거렸다. 단순히 '잘 지내고 있어?' 한 마디 카톡 메시지일뿐인데 이너피스가 깨진걸 보니 여전히 내게 기자라는 존재는 경계해야하는 불편한 존재인가 보다, 하면서도 쉬고 있는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마음이 고마웠다.
혹시 만나자고 하면 언제쯤 보면 좋을런지 달력까지 확인하고 만반의 준비. 딥-브레쓰로 한껏 다시 홍보인 모드를 장착한채 '기자님~^^ 오랜만이에요!!' 공기반 소리반 근황토크도 잠시. '근데 나 궁금한게 있어서' 운을 띄우기 무섭게 바로 배우의 연락처를 물어온다. 있을리도 없거니와 만약 있어도 알려줄리 없는 연락처를. 심지어 다른 회사. 심지어 홍보녀에게. 심지어 퇴사하고 ~이너피스~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내게. 심지어 나는 그 분이 요즘 핫이슈인지도 모르고 있었다.(퇴사 후 연예뉴스 일절 안봄) '아이고 기자님 죄송하지만(왜 죄송한지는 영원한 미스터리) 없네요' 했더니 ㅇㅇ 수고하라며 바로 셔터를 내린다.

일하면서 느꼈던 그 텅빈 기분. 그저 '일'일 뿐인데 서로 '일'을 했을 뿐인건데 나는 또 뭘 새삼 기대했던 걸까 싶었다. 지난 3년간 내가 일하며 느꼈던 관계는 대부분이 그랬다. 결국에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면서도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이들. 무대 위 사람들은 모두 상품, 무대 뒤 사람들은 자신의 득실을 저울질하는 돈 혹은 조회수 숫자들로 여기는 것 같아 신물이 났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 역시 그 관계에 기대를 접고, 웃는 얼굴 뒤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을 만나도 늘 피곤했다.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크나큰 회의감, 노상 느껴왔으면서도 내게는 매번 새롭게 어려웠던 그 감정. 참 오랜만이었다. 한켠으론 이제 그 세계를 벗어나 더이상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켠으론 급격히 외로워졌다. 역시 나는 절대 연예판은 안/못간다. 네버 앤 에버. 아, 물론 모든 세계가 그렇듯 그렇지 않은 사람들(내 기준 좋은 사람)도 있다. 나와 결이 같은 몇몇은 이제 그 관계를 넘어 친구가 되었고, 급격히 외로워진 나는 그 친구에게 연락해 다음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어서 내 결핍을 채워죠.

나는 운 좋게도 학창시절까지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 많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런 한 떨기 온실 속 화초는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믿고 따랐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교묘한 거짓말로 점철된 안면몰수 상황들을 견디며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고 내 스스로도 놀랄만큼 단단해졌다. 그 과정이 과연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여전히 판단이 서질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인간관계에서 효용가치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그 관계에 놓인 내 사람들을 더욱 살뜰히 아껴줘야한다는 것.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내 오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덧글

  • nahollow 2018/07/06 02:33 #

    첫 직장 5년 넘게 다니면서 퇴사는 꿈도 못 꾸는데 대단하심
  • zoamie 2018/07/06 14:18 #

    앗 감사합니다! 첫 직장은 아니여요~ 업계가 이직이 잦은 편이라..ㅎㅎ 댓글이 달려 놀랐네용 반갑습니다!
  • nahollow 2018/07/06 14:30 #

    넵 반갑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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